대략적인 인류의 역사
지구의 역사를 대략 45억년으로 잡는다. 그리고 450만년 전에 현재의 인간과 비슷한 종의 시초라는 의미에서 유인원(類人猿)으로 불리는 무리가 지구상에 처음 등장하고 이중에서 일부 무리가 350만년전에 이르러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란 이름을 얻으면서 허리를 세우고(直立) 두발로만 걸을 수 있게(步行)된다. 이들이 진화를 거듭하여 비로소 20만년 전에 현재 인간들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현생인류가 등장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여년 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농사 및 가축화 그리고 정착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인류의 시작을 450만년전, 350만년전 혹은 20만년전으로 삼든 어느 경우에도 우리 인류 역사의 99퍼센트 이상은 수렵과 채집 경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본인 나름대로 구분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단순화되지 않을까.
시기 | 원 시 | 고대 | 고대/중세 | 근현대 | |
도구 | 석기 | 청동기 | 철기 | ||
구석기(타제) | 신석기(마제) | ||||
생활 | 수렵채집 | 농경목축 | 산업화 | ||
기간 | ~ BC 1만년 | BC 8천~ 5천 | ~ BC 2천 | ~ 18세기 | |
지속 | 400만년/300만년/20만년 | 3000년 | 3000년 | 3000년 |
왜 하필 1만 년 전부터 인류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까?
이미 인간은 똑바로 걸을 수 있었고,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불을 사용하고, 간단한 도구를 만들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오랫동안 수렵 채집에 의존하며 이동하면서 살았을까?
학자들 사이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대부분의 의견은 오랜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의 기온이 상승한 것이 약 1만 년 전 농업이 탄생하고 문명이 출현한 주된 이유라고 본다. 빙하가 물러난 뒤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고, 인간은 돌을 갈아서 도구를 만들고(마제석기) 농업, 직조, 토기 제조, 야금 등을 발명했으며, 항구적인 정착지에서 살기 시작(정주생활)했다.
기후의 변화 덕분에 약 1만 1천 년 전 이라크 지역(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나타났고, 1만 년 전에는 중국과 중앙아메리카 내륙 지역에서도 농사가 시작되었고, 약 8천 년 전에는 인도,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부근 등에서 농사가 시작된 흔적이 있다.
수렵.채집사회의 생활 원리 – 근육과 약탈의 시대
수렵채집사회(Hunting and Gathering Society)의 생계 유지 방식은 계절과 자원 분포에 따라 이동해야 하는 유목 생활이었으며 이는 군집을 이룬 동물들의 이동을 추적하고 식용 식물의 성장 주기에 따라 그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었다.
이때의 사람들은 힘이 세고, 빨리 달리고, 나무 위로 더 높이 올라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대 올림픽의 구호로 사용되고 있고 또한 오래전 유명 신발의 브랜드로도 사용되었던 CAF, 즉 “보다 빠르게(Citius!), 보다 높게(Altius!), 보다 힘차게(Fortius!)” 라는 것이 수렵채집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주요 행동강령이었던 것이다.
4년마다 열리는 전 세계적 올림픽행사가 과거 그리스의 폴리스 공동체의 연대강화를 위해 시작된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어찌 보면 결국 오래전 우리 조상들의 행동강령의 추억 되살리기 행사인 것이다.
이 시대의 승자는 당연히 육체적으로 힘센 자였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육체적 능력 즉 ‘근육’이었다. 체력이 강하고 근육이 잘 갖춰진 스트롱맨이 이 시대의 주역이었다.
채집수렵을 위해서는 1인당 평균 10㎢의 토지가 필요했다. 이들은 잠자는 8시간 정도를 빼고는 하루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녀야 했다.
신석기시대가 시작되어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수렵채집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가 한꺼번에 농경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땅이 비옥한 곳에 생겨난 농경민족의 촌락이 형성되자 수렵채집 사회의 후예들인 유목민들은 수렵채집 활동보다는 농경민족이 생산한 곡식과 가축을 빼앗기 시작했다. 약탈이 그들의 주요 생활 전략이 된 것이다.
수렵채집 유목민과 농경민족의 공존 그리고 대결이 어쩌면 인류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북방 유목민족과 만리장성 이남의 농경민족의 대결과 흥망성쇠가 중국사이고, 유목민족의 이동에 따라 형성된 중앙아시아사가 그렇고 그들의 이주가 유럽에 미친 세계사적 영향도 그러하다.
농경사회의 생활원리 – 근면과 순종의 시대
기후가 따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농사를 하면서 주위의 가축을 길들여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강을 통해 물을 댈 수 있게 되자 1인당 100㎡의 땅만 있으면 농사를 짓고 살 수 있게 토지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수렵채집시대의 10㎢에서 100㎡로 무려 10만배의 생산성이 향상되니까 사람들이 늘어나고 여유시간도 생겨나 생존과 상관없는 장식품을 만들게 되어 예술행위가 본격화되었다.
농경사회의 승자는 당연히 농사를 지을 토지를 많이 보유하고 그에 투입할 가족이나 식솔이 많으며 오랫동안 농토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토지와 노동에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사람 즉 ‘근면’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 사회였다.
농경민족은 가진 것을 유목민족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성을 쌓고 건물을 지어 도시를 형성했다. 그리고 커져버린 사람들의 공동체를 관리하기 위한 정치제도와 종교도 발생한다. 지배 피지배의 계급이 형성되고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분리도 심화되기 시작했다.
농경이 주가 된 고대와 중세 사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배고프고 헐벗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었고 사치와 풍요는 소수의 지배자들의 것이었다.기독교는 일반 대중들에게 이 세상은 저 세상을 가기 위한 중간 거점으로 사치와 출세는 나쁜 것이며 다가올 내세를 위해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가르치고 요구했다
이슬람 또한 죽어서 알라신에게 가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므로 세속의 모든 것은 알라의 뜻에 맡기고 받아들이도록 훈련시켰다.
고대에서 중세 말까지 사람들에게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한 까닭은 달성할 수 없는 물질적 욕구를 억눌러 체념에 따른 순종을 통해 지배층들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질적 풍요(Material fortune)
행복(Happiness) = ------------------------------------------
욕구(Desire)
폴새뮤얼슨의 위와 같은 공식에서 고대와 중세시대의 농경사회는 소수의 지배층(정치권력자들과 성직자들)은 사람들의 욕구를 억제 시키고 체념하게 함으로서 그리고 그들에게 순종 복종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게 하면서(분자를 줄임으로써 느끼는 소극적 행복감) 자신들만의 행복을 추구했다.
중세의 극복 – 여기서 동서양의 운명이 갈렸다!
종교인들과 소수 지배층 만이 행복했던 중세를 벗어난 서양은 물질적 풍요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방법으로 극적으로 나아간 반면 동양은 여전히 욕구를 억제하고 체념하면서 주어진 질서의 틀 안에서 왕에게 복종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지속했다.
여기서부터 근대에 와서 동서양 근본적 차이가 발생했다고 본다. 계속되는 경제와 관련된 역사를 통하여 그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자.
누군가 나에게 체념하고 순종을 강요하면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자.
수렵채집의 시대가 아닌 데도 근육을 강화하고 건강한 몸매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근육의 힘이 아닌 두뇌의 힘이 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인데도 그러하니,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모든 행동강령 - 근육과 근면을 모두 요구 받는 정보화란 이름의 현대를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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